너를 낳고 창밖을 보니 온 천지가 붉게 노을로 물들어 있더라.”
얼마 전 내 생일, 친정어머니가 종종 하셨던 이 말씀이 떠올랐다. 이제까지 많은 노을을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노을이 몇 개 있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기차를 타고 왜관역 근처를 지나며 보았던 노을이다. 어둠이 내려오는 한겨울,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 사이로 마을 전체를 물들이는 붉은 노을을 보았다. 왠지 모를 슬픔을 느꼈다. 이제부터 더 춥고 어두워질 텐데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외로울까?
두 번째는 중학교 1학년 때다. 본당 주일학교 여름 피정에서 마음으로 봤던 노을이다. 가족과 떨어져 또래들, 선생님들과 며칠을 함께 보낸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조별로 저녁식사 준비를 해서 먹고 성가를 부르며 쉬고 있었다. 어떤 선배가 ‘엠마우스’라는 성가를 부르자고 했다.
‘서산에 노을이 고우나 누리는 어둠에 잠겼사오니 우리와 함께 주여 드시어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성염 작사, 원선오 신부 곡)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마치 우리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냥 이렇게 푸르른 자연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보길도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보았던 노을이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40여 분을 더 가는 섬이다. 노을은 그 섬마을과 온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그 노을의 일부가 되어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엠마오 마을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고백했다.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참조)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절망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실한 사랑으로 다가가 새로운 희망을 주신다. 나도 누군가에게 진실한 사랑으로 다가가서 그를 감동하게 하고 그의 마음을 다시 타오르게 한 적이 있었던가? 돌아보며 기도하게 된다. (출처: 가톨릭신문, 도희주)